2024년 프랑스문화예술학회 가을정기학술대회, <올림픽의 인문학>. 2024년 11월 2일, 성균관대학교 퇴계인문관.
인공지능(이하 AI) 기술의 발전으로 기존에 풀지 못하던 문제를 해결해내는 시도가 잇따 르고 있다. 2024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알파폴드2 연구진은, 단백질의 구조를 아미노산 서 열로부터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생명과학 분야의 판도를 바꾸었다는 평을 받았다. 아미노산의 복잡한 구조로 인해 50년 넘게 정확한 메커니즘이 파악되기 어 렵던 것을, AI 모델링으로 분석해 냄으로써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도출해 낸 것이다. 이 제는 생명과학에서 알파폴드 모델을 쓰지 않는 경우가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AI 기술 은 하나의 플랫폼으로서 자리잡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처럼 다량의 데이터가 수집될 수 있고, 충분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수학 모 델의 발전이 겹겹이 쌓일 수 있고, 다량의 데이터를 다뤄 모델을 돌릴 수 있는 인프라(환경)가 조성될 수 있게 되면, 이론적으로는 AI 기술을 활용한 혁신이 가능하다. 그리고 실 제로 그 결과물을 우리는 눈앞에서 보고 있다. 2024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제프리 힌튼의 볼츠만 머신을 활용한 신경망 모델은 1970년대에 제시된 연구였다. 딥러닝의 기반이 된 이러한 수학적 모델링들이 본격적으로 꽃을 피운 것은 충분한 데이터가 모이고 이를 돌릴 수 있는 기술적 인프라가 형성된 2000년대에부터였다. 그리고 그 기술의 상업화 가능성과 성장성에 대한 투자가 잇따르면서 인재들이 몰려들게 되었다. 우리는 그 결과물의 시대에서 현재 살고 있다.
AI 모델은 이제 일반적인 사람들의 일상 속 더 깊은 곳까지 침투하고 있다. 기존에는 온라인으로 수집되던 사람들의 행동을, 물리적인 공간에서도 수집 가능하게 되었다. 처음 에는 센서와 이미지 인식 기술의 영향이 컸다. 이전에는 물리적 환경을 수기로 기록하고 관리해 데이터로 밀어넣어 학습을 시켰지만, 이후에는 객체 검출을 통한 이미지 인식과 움직임을 맥락적으로 이해하고 수집하는 모델의 발전이 이뤄지게 되었다. 그뿐 아니다. 값비싸고 번잡한 센서 없이 단순히 휴대폰과 CCTV, 블랙박스 만으로도 이용자의 행동 영상을 모을 수 있게 되었다. 즉, 데이터 수집에서의 비용이 낮아졌다.
움직임과 환경이 규모 있게 쌓이는 가운데, 다른 한 편에서는 인프라(GPU 등)가 빠르 게 발전해 왔다. 매개변수를 크게 늘려 기존에는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복잡한 모델도 돌릴 수 있을 정도로 데이터센터들이 구축되고 있고, 최적화가 이뤄지고 있다. 그 결과물을 우리는 생성형 AI로 인해 나오는 글과 사진, 동영상 같은 아웃풋으로 선명하게 볼 수 있다. 충분히 효용 높은 출력물들이 확인되고, 그것이 가치 있게 쓰일 수 있는 사례들이 쌓이면, AI 기술은 모든 분야에서 플랫폼으로서 작동하게 된다.
일상을 파고든 AI 기술은 산업적으로 지지를 받으며 이제 더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들 을 풀어갈 것으로 기대된다. 다양한 감각을 맥락으로 엮어 인간과 상호작용할 수 있게 만드는 멀티모달(multimodal) 모델들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로봇과 공 간컴퓨팅(spatial computing) 영역의 성장도 점쳐지고 있다. 이 안에서 인간은 어떤 문제 를 제시하고 풀어갈 수 있을까? 본문에서는 특히 AI가 올림픽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지속 가능성에 기여하고 있고, 또 앞으로 기대되는 지점은 무엇이 있을지 살펴보고자 한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본문에서 논할 올림픽과 지속가능성의 정의와 범위를 먼저 서술하 고자 한다. 통상 올림픽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논의는 환경적, 경제적, 사회적인 테마에서 다뤄져 왔다. 주로 환경 관점에서는 탄소중립 목표를 기반으로 한 경기장의 설립과 인프 라 운영의 효율 증대를 중점적으로 살핀다. 경제적 관점에서는 기존 시설의 이용과 타 도시와의 공동 개최를 통해 개최국이 짊어질 부담을 낮추고 대회를 지속할 수 있는 방식 들이 논의된다. 사회적으로는 다양성과 포용성,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한 평화를 담론으 로 하는 장을 연다는 데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이제는 새로운 측면에서도 지속가능성을 논의할 때다. 서두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AI 기술은 빠른 속도로 인간의 삶에 침투하고 있고, 상호작용을 통해 인간과 인간사회가 가 진 물리적 한계와 그로 인한 문제들을 풀어갈 것으로 기대된다. 중요한 것은 방향성이다. 올림픽의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AI의 발전은 어떤 문제를 짚어낼 것인지, 그리고 그 문제 해결의 방향을 사람들은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를 살펴야 한다.
세 가지 측면에서 논의 가능하다. 첫 번째는 기술 혁신과 자본이 맞물리고, 그에 따라 국가 간 불평등이 더욱 고착화되는 것을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에 있다. 막대한 자본력을 필두로 높은 기술력을 써서 선수들의 능력을 끌어 올리는 것, 그리고 그 권력을 중심으 로 올림픽 거버넌스를 지배하고 룰을 일부 국가에 유리하게 작동하도록 만드는 순환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세계인의 축제가 아닌 일부의 돈 잔치, 기술 시연의 장이 될 수 있다. 올림픽 정신이 훼손되고 오락성 콘텐츠에만 머물게 될 수 있다. 대회 자체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도, 공정과 평화와 존중의 가치를 지켜가면서 기술적으로, 혹 은 규제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야 한다. 이는 기술을 네거티브 관점에서 바라보는 측면이 라 할 수 있다.
두 번째 측면은 선수 개인들의 한계를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과거 에는 더 빠르게, 더 높이, 더 멀리 뛸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한 강도 높은 훈련과 정신적 고난이 수반됐다. 선수들의 선수 생활은 일부 종목을 제외하고는 이십 년을 넘기기 어렵 다. 과도한 훈련으로 부상을 겪으면 그 수명은 더 짧아진다. 정신건강의 문제도 크다. IOC 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불안과 우울 증세를 경험하는 프로 선수들의 비율이 일반인 들 대비 두 배 이상 높다고도 한다. 다행인 지점은, 선수 개개인이 겪을 한계를 기술적으 로 보조하는 방안들이 빠르게 제시되고 있다. 데이터에 기반한 개인 맞춤형 훈련 방법, 부상을 줄이고 효용을 높일 수 있는 소재의 개발, 효과적인 멘탈 코칭에 이르기까지 선 수가 운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앞뒤로 보조하는 기술들이 촘촘히 도입되고 있다. 특히 개인 데이터에 기반한 맞춤형 훈련은 해당 선수가 충분히 넘어설 수 있는 한계를 AI 모 델이 차근차근 제시하며 선수가 자연스럽게 목표치를 따라잡을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 러한 방법론들은 대중의 AI 헬스 트레이닝 어플리케이션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세 번째는 올림픽 시청자들을 지속적으로 끌어들이는 측면이다. 시청자들은 결국 앞 두 가지, 즉 공정성이 충분히 지켜지는 가운데 슈퍼스타들이 한계를 넘어서는 장면들에 열광한다. 시청자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매우 강력하다. 야구 경기의 ABS 판독 시스템 도 입과 축구 경기의 실시간 오프사이드 판정은 물론 VAR을 활용한 판정 재검토 체계 시행 은 더 공정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을 뾰족하게 노린다. 미디어 소비 습관이 바뀌는 환경적인 대응도 기술로 해결해가는 테마 중 하나다. 실시간에 가깝게 짧은 콘텐츠를 AI 로 만들어 온라인 공간에 유통해 호응을 얻고,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더 많은 사람들을 중계화면 앞에 붙들어놓는 방법도 여기에 들어간다. 선수의 맥박수를 카메라로 체크해서 현장에서나 느낄 수 있는 긴장감을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방식, 증강현실 서비스로 현장 감을 높이려는 시도들 모두 시청자들의 올림픽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지속 가능하게 하 는 매개가 된다.
상술한 바와 같이, AI 기술의 발전과 빠른 침투는 올림픽의 지속가능성 담론에서 새롭게 그 영향력이 검토돼야 하는 요소다. 한 축에서는 그 기술 발전의 영향이 사회적, 윤리적 으로 자칫 올림픽 정신 중 하나인 공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부분에서 규제 담론이 나오 게 된다. 다른 한 축에서는 선수들의 부상 위험을 줄이면서 더 효율적으로 자신의 기량 을 끌어올릴 수 있는 지점에 기술이 큰 역할을 해낸다는 점에서 선수의 지속가능성을 논 한다. 마지막 축에서는 올림픽 이벤트의 가장 중요한 참여자인 시청자들을 지속적으로 끌어안기 위한 기술적 시도들의 확장성을 살펴본다. 이 세 축을 중심으로, 앞으로의 AI는 어떻게 더 빨리, 더 높이, 더 멀리 인간의 한계를 허물 수 있을지 논하고자 한다.
첫째, AI 기술은 더 빠르고 더 저렴하게 더욱 높은 효율을 낼 수 있는 소재 개발에 매 우 적합하다. 산업적으로 쓰이는 용어로서의 ‘시뮬레이션’을 빌려오고자 한다. 예를 들어 운동화의 경우 지면과 접촉하는 소재의 탄력을 더 높일 수 있는 다양한 재료의 결합을 예전에는 실험실에서 일일이 섞어가며 실험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프로그래밍으로도 그 결과물에 대한 예측을 해낼 수 있게 되었다. 물리적 공간인 지면 실험도 단지 땅과의 접촉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주변 환경에 따른 온도, 습도 등 다양한 요소가 실험 대상이 되어야 하는데, 다양한 변수의 제공과 반영은 AI 기반 시뮬레이터들이 잘 해내는 요소다. 개발을 위한 비용의 절감은 단지 신소재 개발 측면에서만 검토되는 것이 아니다. 기존에는 값이 비싸 쓰기 힘들었던 소재의 대체재를 찾는 것도 마찬가지로 데이터에 기반해 탐색할 수 있게 되었다. 향후에는 소품종 대량생산이어도 충분히 낮은 비용에서 개인맞춤형 제품이 출시될 수 있는 제작업의 혁명도 가능해지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둘째, AI 기술은 더 안전하게 사람의 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 사람과 실질적으로 상호작용하며 인간의 생산성을 높이는 AI 에이전트의 사례를 들고자 한다. 일반 대중으로 나온 AI 에이전트 기술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유해성 논란이 있다. 너무 깊은 관계를 맺 으면서 AI에 의해 종속되는 성향이 10대들 사이에서 나타난다는 뉴스도 나온다. 하지만 충분히 컨트롤 된 상황에서 정확한 목적성을 가지고 설계된 AI 에이전트는 인간의 역량 을 높일 충분한 도구가 될 수 있다. 맞춤형으로 정확히 맥락을 파악하고, 불필요한 일들 을 쳐낼 수 있도록 돕는다. 일률적으로 정해진 운동 방식에만 따르지 않고, 선수 개인에 게 더 맞는 루틴을 부여할 수도 있다. 프로페셔널 선수들에게 굳어져 있는 과거의 오랜 습관 가운데, 역량을 지속 가능하게 가져갈 수 있는 방안들을 대체재로 제시할 수도 있 다. 여기에 최근에는 노화를 늦추기 위한 인류의 프로젝트도 시행되고 있다. 육체적 노화 와 정신적 번아웃을 늦출 수 있는 AI 차원의 연구들이 기대되는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AI 기술은 더 쉽게 사람들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 경기장에 직접 가지 않아도 TV 중계를 통해 전세계가 올림픽을 즐길 수 있게 되었고, 집 앞 TV에 앉아있지 않아도 모바일 기기를 통해 어디에서나 올림픽을 즐길 수도 있게 되었다. 이 다음은 무엇일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선수가 한 경기장에 모이지 않아도 되는 일은 사실 올림픽에서 벌어지긴 쉽지 않을 것 같다. 오히려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좀 더 높은 현장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시도가 더 다각도로, 더 자연스러운 매체와 기기를 통 해 침투할 가능성이 높다. 꼭 VR 기기가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사람들의 감각 적 착각을 활용해 멀티모달의 효용을 극대화할 수 있는 콘텐츠 시도가 늘어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 예로 미술계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오직 시청각 만으로 자연의 안에 있는 듯한 감각을 구현할 수 있는 작품들이 나오기도 했다. 더 감각적으로 접근성을 높이는 방향이 기대된다.
결론적으로 AI 기술은 빠르게 각 분야의 한계를 허물어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문제를 풀 것인지, 그리고 그 풀이의 방향은 어떻게 설정될 것인지이다. 올림픽은 현재 기술 격차에 따른 공정성 시비와 선수들의 타 직군 대비 빠른 은퇴연령, 대중적 인기의 저하와 같은 새로운 문제들에 부딪혀 있다. 이러한 문제는 값비싼 기술 개발의 비용을 AI 기술로 낮출 수 있는 방안, 선수들의 지속가능한 도전을 지지하는 AI 기술의 역할, 소 외된 시청자의 접근성을 높일 AI 기술의 도전과 같은 방법으로 풀어갈 수 있으리라 본다. 그리고 올림픽은 현 인류가 이 시대에 접하고 있는 다양한 한계들을 차근차근 풀어가는 테스트베드로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내리라 기대한다.